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중동전쟁 (문단 편집) == 배경 ==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뒤 [[영국]]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손을 떼게 된다. [[무주공산]]이 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지역을 둘러싸고 아랍인과 유대인 간의 충돌이 지속되었고, [[UN]]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분할안도 아랍인과 유대인 양측의 격렬한 반대[* 당시 아랍계가 차지하던 토지는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전체의 85%였음에도 불구하고 UN의 분할안에 의해 아랍계의 영토는 45% 미만으로 떨어졌고, 지중해 연안 대부분이 유대인 지역에 포함되었으며 분할안에 의해 책정된 유대인 영토와 아랍인 영토들 역시 상대 지역에 가로막혀 격리된 [[월경지]]들이 존재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이 지역이 자신들만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과 가장 비옥한 올리브 농경지들이 아랍 영토로 분류된 점, 그리고 이스라엘 영토는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불모지인 점, 예루살렘 인근 지역이 아랍계 지역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국제 공동구역에 포함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양측 모두가 불만을 품었으며, 당사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수도로 건설해 나갔다. 특히 예루살렘은 1948년부터 1967년까지 줄곧 요르단이 점령했다가,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에게 빼앗겨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줄곧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에 부딪혀 좌초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지게 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유엔분할안.png|width=100%]]}}}|| || 1947년 UN 분할안에 따른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지도.[* 어디까지나 대강의 구상으로 만들어 놓은 영토일 뿐이지, 공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유대인과 아랍인 국가들의 영토가 저러지는 않았으며, 당시에는 모두 영국의 식민지였다. 다시 말해 확정된 영토가 아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